퇴거 15일까지 신청하라고 되어있지만 30일 한 달을 기점으로 퇴거신청을 했다.
한 번 퇴거신청을 하면 번복이 안된다는 문구에 가슴이 덜컥, 신청버튼을 누르려던 손이 멈칫 한다.
갓난 둘째를 안고 온 것이 2014년이다.
뽀얗고 만지면 터질 것 같고 지켜보면 땅으로 꺼지거나 하늘로 솟아 사라질 것 같아 너무나 사랑스런 아기가 그 평생 효도를 다하고 이제 불효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중학생이 되었다.
그것도 7월 여름에 왔고 올해 7월 말에 나가니 정말 만으로 12년을 꽉 채우고 나간다.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사전점검 했을 때가 생각난다.
SH시행 아파트라 장기전세를 새집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때는 사전점검 전문업체도 없었다.
다만 장기전세 입주 카페에서 올라온 팁들을 모아서 대비했다.
답답한 나는 손재주 좋으신 아버지에게 도움을 요청드렸고 먼지나 새아파트 증후군 때문에 아이들을 당일 어머니께 맡기고 사전점검일 날 갔다.
난생 처음 입주매니저 여사님을 따라 내집도 아닌데 새집에 들어갔다.
물론 새집 특유의 화학 냄새와 먼지들이 가득했지만 인생 처음으로 새집을 맞이할 수 있었다.
시프트라는 제도를 잘 모르셨던 아버지는 그저 서울시에서 주는 임대아파트로 솔직히 아들 식구가 그곳에 들어가는 거에 대해 별로 탐탁치 않아 하셨다.
눈으로 직접 보시고 좋은 아파트 얻었다 라며 안심해 하시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20년이라는 정해진 시간이 있지만 저 둘째가 대학 들어가는 세월이니 걱정이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빠르게 다가오는 2년 만기와 또 셋집을 구하려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여러 부동산에 전화를 돌리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좋았다.
지금이 최악이라고 하지만 늘 부동산 사장님의 첫 마디는 요새 전세 매물이 없다는 말이 고정값인 것 같다.
그 말이 정말 듣기 싫었다.
내 집이 아니기에 줄눈시공도 하지 않았다.
커튼도 하지 않고 인터넷으로 주문해 블라인드를 달았다.
다만 침실 세 번째 방 외기에 노출된 발코니에 긴 창문과 안방 발코니에 빨래 건조대를 사비로 설치했다.
입주청소는 직접했다.
이제 막 40대 초반이라 가능했던 것 같다.
2주에 걸쳐 토요일, 일요일을 이용해서 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한 주는 집에 있는 청소기와 인터넷으로 주문한 걸레로 거실(침실)과 주방을 포함하여 바닥의 먼지들을 모두 청소했다.
바닥을 3번 이상을 걸레로 닦아낸 것 같고 그제야 겨우 걸레를 빤 물이 맑아졌다.
주문한 걸레 4개는 그 주말에 임무를 다하고 용도폐기했다.
원래는 토요일 하루만 투자하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아침 일찍 가 홀로 점심 한솥도시락을 먼지 구석 바닥에서 먹고 나서도 바닥청소는 끝날 기미는 없었다.
결국 다음날인 일요일도 쉬지 못하고 나와야 했고 그 다음주는 벽과 천장, 주방 싱크대, 신발장, 욕실 수납장, 창문, 창틀을 닦아 내랴 온전히 토,일요일을 쏟아 부어야 했다.
그러고도 아마 차주 반나절을 베이크아웃하면서 또 청소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행히 몸살 나거나 쓰러지지 않고 평일 회사에서 야근까지 했다.
오히려 내 식구들이 새집에서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살 수 있다는 사실에 힘이 났다.
20년이 한계지만 내가 원하면 계속 머무를 수 있고 전세금도 5% 인상 한도안에서 올려주기만 하면 됐다.
실제 살아보니 2회차 연장 까지는 7,8백만원 내외로 인상해서 계약했고 그 다음 6회차까지는 각각 추가 상승액이 1천만원을 초과했지만 크게 부담되는 액수는 아니었다.
이사비용이나 기타 매몰비용을 따져보면 서울시의 정책 혜택을 누렸다.
늘 그렇지만 처음엔 감사함으로 지내지만 일상이 되면 간사하게도 당연하듯 살아간다.
아이들이 억세서 그런지 아님 물건이 약해서 인지 몰라도 수도 금속 수전이 부러졌을 때 안사람은 장기전세라고 일부러 저질 자재를 섰다고 불만을 토했다.
나는 자재를 그렇게 일부러 임대와 일반분양으로 관리 시공하는 것이 더 힘들고 오히려 비용이 더 든다고 말했지만 소용없었다.
나 역시도 살다보니 불만도 생기고 감사하지 못햇다.
생각해 보니 서울 시민분들의 소중한 세금으로 주거 안정을 누릴 수 있었다.
또 이곳 한 곳에서 아이들이 유년시절을 동네 친구들과 길게 유대관계를 가져갈 수 있었고 크게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자라 주었다.
비록 이곳에 사는 동안 사랑하는 아버지 내게 큰 산처럼 버텨주었던 그분을 잃었고 늘 건강할 것 같았던 나 역시 쓰러졌다.
그래도 이렇게 회복되었고 아직까지는 건강관리를 잘하고 있어 다행이고 감사하다.

이제 이곳을 떠나는 날도 한 달도 남지 않았다.
부지런히 짐을 정리하고 여러 일들 잘 치뤘으면 좋겠다.
이곳에 정이 많이 들고 더 머물고 싶지만 떠나야 하는 기한은 어차피 정해진 터라 딱 적기에 마무리할 수 있어 감사하다.
'박상협문(博常狹文)' 카테고리의 다른 글
| 13. 봄이 지나갔다. (0) | 2026.06.03 |
|---|---|
| 12. 또다시 나타난 꿈_이사 전후 (0) | 2026.05.23 |
| 11. 라~이면 일병 구하기 (0) | 2026.05.05 |
| 10. 장애인의 날_장애는 극복이 아니라 수용입니다. (0) | 2026.04.21 |
| 09. 마음껏 복권을 긁어라 아들아 (2) | 2026.04.19 |